3류 관광엽서사진관

청계천에 세운 '스프링'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나 보다. 작년에 클래스 올덴버그가 조형물 설계자로 결정된 이후 부터 그런 말들은 계속 나왔다. 파이낸스 센터를 몇 번 지나가며 보기는 봤는데 특별한 인상이 남질 않았다. 마치 그의 빨래집게를 알고 있었지만 필라델피아에서 봤는지 안봤는지 긴가민가 싶은 것처럼. 뭔가 쌩뚱맞은 녀석을 보기는 한 기억이 있긴 한데.

I.M. 페이가 루브르에 세운 유리 피라미드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평이 좋아지거나, 모방의 대상(이를테면 뉴욕 5th Ave.의 애플 스토어처럼)이 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I.M.페이의 그랑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는 옆에서 보면 어색하지만, 루브르 궁 정면에서 보면 썩 어울리는 편이고,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든다.

교토 근방에 I.M.페이가 설계한 미호 박물관(MIHO MUSEUM)이 있다.

JR 교토역에서, 비와코센(琵琶湖線)을 15분쯤 타고 이시야마역(石山駅)에 내린 후(2006년 여름 기준 260엔), 버스 정류장 쪽 출구(남쪽)로 나와 3번 승강장에서 미호 박물관 행 테이산(帝産)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대 꼴로 다니고, 승강장에 한국어를 포함한 각국 언어로 짧은 안내물이 붙어 있다. 편도 요금 800엔. 소요시간은 45~50분 정도. 종점과 기점을 연결하는 것이니 마음 편하게 한 숨 푹 자도 되고, 가는 길의 주변 경관을 봐도 된다. 산골로 들어가는 주변 경관도 아름답다.

시가켄(滋賀県)의 시외버스는 뒤에서 타면서 번호표를 받는다. 기점에서 타면 1번 번호표, 그 다음 정류장은 2번 번호표 이런 식으로. 요금은 차에서 내리면서 내면 되고, 전면 유리창 위를 보면 자기가 탈 때 받은 번호가 보이고 그 밑에 요금이 표시된다.

주차장(이 근처에도 상당히 괜찮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에서 올라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에는 식당과 빵집이 있다. 유기농으로 키운 재료만으로 음식을 판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정말 유기농인지는 그런가 보다 믿을 뿐이고, 우동과 다꽝이 조미료 없이 만든 담담한 맛이라 괜찮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삶의 여유가 넘치지는 않지만, 적당하니 있는 그런, 예순은 훨씬 지났을 것 같은 노인들만 식사를 들고 있었다.

나와서 찬찬히 올라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도 모두 곱게 늙은 노인들 뿐이었다. 간혹 보이는 젊은이들은 소풍나온 연인들이었고. 홀로 다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하지만, 산에서 떨어져 죽어야겠다는 심정이 들만큼 외롭지는 않았다. 박물관 전경을 두고 죽기에는, 경관이 너무 아름다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식당, 빵집, 기념품 판매소, 화장실 등이 있는 매표소. 사진 왼편과 오른편에 보이는 잔디밭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어서, 매표소 안의 에어컨 바람에 뼈가 시릴 정도로 추운 사람에게는, 나와서 책을 보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입장료는 성인 1,000엔, 학생 800엔. 교토 시내 왠만한 절 입장료가 500엔이고, 박물관이 1,000엔인 것에 비하면 비싼 것은 아니지만, 중앙박물관 입장료가 2,000원인 우리 기준으로는 싼 값은 아니다. 사설 미술관인 리움이 10,000원이고 특별전도 그 정도인 것에 비하면 비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학생증을 들고 가서 200엔 할인 받은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마 그것은 작년에 체스키 크룸로프의 에곤 쉴레 미술관에 들어갈 때 학생 확인이 안되니 할인 해줄 수 없다며 직원과 실랑이를 한 기억때문일 것이다. 국제학생증을 별도로 만들어가지 않았는데, 동행했던 사람의 학생증에는 university가 찍혀 있어 학생이라는 게 확인이 되지만, 내 학생증에는 학생임을 확인할 수 있는 문구, 즉 알파벳으로 적힌 것이 하나도 없으니 학생할인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저 사람보다 어려 보이는 내가 학생이 아닐리 있겠느냐는 이유로 우기고 있으니, 귀찮았는지 학생요금으로 들여보내주기는 했지만 기분은 찜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의 자존심;;이자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던 것 같다. 그는 학부 시절 다니던 국립대 학생증을 내밀었고, 나는 보통 사용하던 내 학생증을 보여주었으니까. 재미있었던 것은 그 미술관은 보물찾기 놀이 하듯 에곤 실레의 작품을 꽁꽁 숨겨 놨는데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그 형은 보지 못하고 나만 봤다는 것이다.

여담인데 에곤 실레는 미성년 강간 혐의로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1년만에 추방되었다. 그는 그 동네를 꽤 마음에 들어해서, 마을을 대상으로한 몇 개의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자신을 추방한 마을에 자발적으로 작품을 기증할리는 만무했을 테고, 사후에 워낙 유명해져서 소규모 미술관 차원에서 구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체스키 크룸로프의 에곤 실레 미술관에는 드로잉 몇 점만 실레의 이름으로 걸려 있을 뿐이다.

미호 박물관에서도 처음에는 내 학생증을 보고 학교를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투의 표정을 지으며, 옆의 매표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작년 생각이 잠시 나서 1,000엔짜리를 꺼내 들으려니, 학생증을 가리키면서 어느 것이 학교 이름이냐고 물어왔다. 망설임없이 밑줄을 그어 알려주니, 그제서야 할인을 해주었다. 이후 다른 곳에서도 학생할인을 받을 일이 있었는데, 이 곳처럼 세세히 보지는 않고 그냥 학생증 같은 카드를 내나 안내나만 확인했다.

아무튼 I.M.페이는 미호 박물관을 일명 무릉도원이라고도 하는 도원경을 형상화하여 설계했다. 무릉도원 고사에서 어부가 복숭아 향기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매표소에서 박물관 본관 까지는 약 2km 쯤 떨어져 있고, 이를 걸어가야 한다. 노약자를 위해서 골프 카트 모양의 전기 자동차가 다니는 데, 속도는 빠르지 않다. 천천히 뛰는 정도. 그러니 산책 삼아 걸어 올라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어부는 작은 동굴을 지나 도원경에 이르게 되는 데, 그와 비슷하게 터널을 지나야 박물관에 이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터널 입구. 이곳까지 오는 길도 주변 숲이 울창해서, 걷기 좋은 데다 마침 태풍이 지나가는 날이라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 소리 듣기가 좋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터널 내부. 금속성의 터널이, 도원경 고사의 동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리는 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터널의 끝. 멀리 보이는 건물이 박물관 본관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터널을 나오면 마지막으로 다리를 건너야 박물관 본관에 이를 수 있는데, 다리 좌우로 펼쳐진 산이 아름답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물관 입구


입구에 들어서서 정면을 바라보면, 햇빛이 유리창을 지나 부드럽게 쏟아지며 넓은 공간에 따뜻함을 뿌린다. 한눈에 들어오는 주변 경관이 아주 아름답다. 설계자의 의도대로 자연 속에 파묻힌 별천지 같은 공간이다. 매표소부터 길, 다리, 박물관 본관까지 금속과 유리라는 첨단 제품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위화감 없이, 산과 잘 어울렸다. 통나무, 토담집만 자연과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알루미늄 덩이가 항상 도시와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물관에 들어서서 정면을 보이는 경관. 일본식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티가 역력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물관 내부의 기하학적 골조. 기념품으로 파는 엽서에는 이 곳에 조명을 비추어 찍은 사진을 파는 데, 참 아름답다.


작은 규모에 비해, 고대 이집트(세상에 이집트 유물과 피카소 그림 없는 박물관은 없다지만), 고대 그리스(누군가의 정원에서 떼어온 프레스코화와 우물가의 모자이크는 볼만하다), 고대 로마, 남아시아, 중국, 이슬람 등 소장품의 범위는 넓은 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간다라 양식의 불상. 자연적인 채광을 이용하여 미술품을 전시한 상징적인 사진이다. 햇살의 따스러운 느낌이 불상의 온화한 미소를 더욱 부드럽게 만든다. 출처: 미호 박물관 홈페이지


냉정하게 말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전시품 들 중 특별하거나 유명한 것은 없다. 박물관 자체가 소장품 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이랄 수 있다.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 근교에 당일치기 데이트하러 갈 수 있는 분위기의 여행지를 좋아하는 사람, 마음과 몸의 시간 모두 넉넉한 사람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곳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물관 반대편 산에서 찍은 박물관 전경. 사진 상태가 안 좋은데, 팸플릿에 나온 사진에는 산안개가 살포시 퍼져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출처: 미호 박물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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