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관광엽서사진관

2007년 말에도 어김없이 라디오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이 나왔다.

이 곡에는 나름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때 음악선생님이 '음악교사 생활 25년 동안 너 만큼 노래 못하는 놈은 처음 봤다'라는 평을 하시면서, 가뜩이나 음악에 둔하다는 것에 자괴감이 있던 내게 대못을 박으셨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그래도, 교사로서 미안한 느낌이 있었는지, 음악을 잘 듣기라도 해보라고 했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면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이다'라는 취지의 조언(?)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말은 '여러 음악을 조목조목 따져 듣고, 마침내 9번을 들어서 이를 해석할 수 있다면, 음악을 많이 들었다 말할 수 있다(그럼으로써 음악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는 의도였겠지만, 나는 '9번 교향곡이 정말 좋으니, 꼭 들어라'라고 이해했다.


일요일이나 휴일 아침이면 아침마다 9번 교향곡을 들었다. 군대에 간 뒤로 그 습관은 없어졌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진은 런던의 하이드파크인가, 켄싱턴 파크인가의 화장실에서 찍은 베토벤 9번의 타일 악보.


그 뒤로 10년이 넘게 흘렀고, 예전처럼 정해놓고 듣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생각나면 찾게 되는 것이 9번 교향곡이다. 하지만, 이 곡에 대해서는 아직 음악 그 자체로 보다 정치적 의미로 더 강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 곡의 정확한 명칭은 다음과 같다.

쉴러가 쓴 송가 '환희에 붙임'을 마지막 합창으로 한 대관현악, 4성의 독창, 4성의 합창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폐하에게 심심한 경의를 가지고 루드비히 반 베토벤에 의해서 봉정된 교향곡 작품 125. 1826년 마인트 쇼츠 부자(父子) 출판사[각주:1]에서 출간한 교향곡 제 9번의 초판 스코어.

음악사적으로 서로 다른 두 교향곡을 연결시켰기 때문에 3악장과 4악장은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베토벤은 9번의 작곡을 1817년에 시작하여 1823년에는 3악장까지 완성시켰다. 그러나 그는 당시 겪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악화를 고려하여 원래 교향곡 10번의 피날레로 예정되었던 환희의 송가를 9번의 마지막 악장에 결합시킨다. 그런 이유로 들으면 들을수록 악장간 통일성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쉴러의 환희의 송가는 베토벤의 작곡 동기였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교향곡 9번의 환희의 송가 가사는 베토벤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1803년판 쉴러의 시의 열여덟 절 중 단지 절반만 사용했고 또 자신의 시적 관점에 따라 그것을 자유로이 편집한다.

O Freunde, nicht diese toene!
오 친구들이여, 이 가락이 아닌
Sondern lasst uns angenehmere anstimmmen und freudenvollere!
더욱 즐거운 그리고 기쁨에 넘치는 노래를 함께 부르자!

Feunde schoener Goetterfunken,
환희여! 아름다운 주의 빛,
Tochter aus Elysium,
낙원에서 온 아가씨여,

wir betrenen, feurtrunken,
정열에 넘치는 우리들은
Himmlische, dein heilgtum,
그대의 성스러운 곳에 들어가리!

Deine Zauber binden wieder,
가혹한 세상의 모습에 의해 떨어진 것을
Was die Mode streng geteilt;
그대의 매력이 다시 결합시키는도다
Alle Menschen werden brueder,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된다.
wo dein sanfter fluegel weilt.
그대의 고요한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Wem der grosse Wurf gelungen,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아
Eines Freundes Freund zu sein,
만인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누구나
Wer ein holdes Weib errungen
여인의 따뜻한 사랑을 얻은 누구나
mische seinen Jubel ein!
이 환희에 그의 목소리를 더할 수 있게 하자

Freude trinken alle Wesen
환희는 모든 피조물이 누리는 것
an den bruesten der Natur,
태초부터 가슴에 안고
Alle guten, alle Boesn
모든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Folgen ihrer Rosenspur.
장미핀 환희의 오솔길을 간다.
Kuesse gab sie uns und Reben,
환희가 우리에게 준 입맞춤과 포도주
Eine freund, geprueft im Tod,
그리고 죽음조차 빼앗아 갈 수 없는 친구,

Wollust ward dem Wurm gegeben,
기쁨은 벌레에게도 주어지는 것
und der cherub steht vor Gott.
그리고 지품천사는 신 앞에 선다.

Froh, wie seine sonnen fliegen
수많은 태양이 기쁘게 움직이듯
durch des Himmels praecht'gen Plan,
하늘의 빛나는 계획에 따라
Laufen, brueder eure Bahn,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
Freudig, wie ein Held zum Siegen.
영웅이 승리의 길을 달리듯.

Seid umschlungen Millonen!
포옹하라! 만민들이여!
Diesen kuss der ganzen Welt!
온 세상은 키스하라!
Brueder! ueder'm Sternenzelt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Muss ein lieber, Vater wohnen.
사랑하는 주가 계시니,

Ihr stuerzt nieder Millionen?
억만의 인민들이여, 엎드려 빌겠느냐?
Ahnest du den Schopfer, welt?
세계의 만민이여, 조물주가 느껴지는가?
such'ihn ueber'm sternenzelt!
별의 저편에서 그를 찾으라!
Ueber sternen muss er wohnen.
별들이 지는 곳에 그는 있다.

그러나 악장간의 비일관성은 앞의 세 악장, 1, 2, 3 악장에도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1악장에서는 비극적인 느낌의 주제가 나타나고 있으며, 2악장은 상대적으로 발랄한 느낌이다. 이에 비해 3악장은 안정적이며 조화롭다.

그래도 악장 간의 부조화는 3악장과 4악장 사이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3악장이 끝난 후, 느닷없는 도입부와 함께 4악장이 시작하고 첼로가 나온 다음 , 다시 팀파니가 울려대고, 그리고 약간의 현악기로 긴장이 고조된 다음, 묵직한 음색의 첼로가 유명한 주제부를 연주한다. 악장의 주제가 상당히 뒷부분에 나오게 되는데, 그래서 어떤 음반에서는 이 부분만 따로 떼어 트랙으로 분리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으로써 이 곡이 전하는 유토피아적 메시지가 극대화 된다. 베토벤은 베이스의 서창에 대한 초고에서 이전의 악장 간에 나타나는 의도적 부조화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아니, 이러한 카오스는 우리에게 자신의 절망을 상기시킨다. 오늘은 기념일이다. 노래와 춤으로 이 날을 기리자.

첼로, 뒤이어 현악기가 주제부를 연주하고, 관악기와 팀파니가 곡을 변화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남성 독창이 나타난다. 남성 독창이 끝난 후 잠시 숨을 고른뒤에야 합창이 나타나고, 그럼으로써 감정을 고양시킨다.

한층 끌어올려진 감정은 상당히 빠른 속도의 코다로 이어진다. 첼리비다케 같은 지휘자는 이 부분을 매우 느리게 처리하지만, 감정의 고양이 극대화되었을 푸르트뱅글러의 51년 바이로이트 녹음은 인간의 연주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고 갑작스럽게 끝나게 된다.

부분적으로는 부조화 같지만,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아구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 톱니바퀴 돌 듯 딱딱 맞아 떨어지기보다 어물쩡 돌아가는 인간 세상에 더 적절한 구성처럼 느껴진다.

9번 교향곡에서 강조하는 환희가 상징하는 바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는데, 다음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문화의 위대한 긍정적 작품들에 묘사되고 있는 '유희(보상없는 노동)', 미, 형제애의 초월적인 영역들에 대한 의식을 상실한다면, 만일 우리가 교향곡 9번의 꿈을 상실한다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문명의 공포들에 대해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아무런 수단도, 아우슈비츠와 베트남에 반대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메이너드 솔로몬 외, 윤소영 옮김, 베토벤 '윤리적 미' 또는 '승화된 에로스')

즉 9번 교향곡에는 공유할 수 있는 내용과, 공유해야만 할 이유가, 또 공유를 가능케하는 마력이 있다. 명 지휘자 푸르트벵글러는 결코 9번 교향곡을 스튜디오에서 녹음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합창을 공통의 경험으로 남겨야 하는 의미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야만과 환멸의 시대를 넘기 위해 년말이면 9번 교향곡을 연주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1. 현존 악보사 중 두번째로 오랜 회사로서 1748년 창업했다. 바그너의 악보를 독점 출판했고 몇 개의 잡지도 출판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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