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관광엽서사진관

4. 교토, 이것저것

여행2007. 1. 1. 21:58
1. 일본 여행 중 안 좋은 기억이 하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복통이 찾아오는 터라, 갑작스레 화장실을 찾아야만 하는 사태가 발생했었다.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호텔의 화장실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일어섰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듣도 보도 못한 비데가 있었던 것이다.

신기한 게 화장실에 있나 보다 그냥 일어서면 되었으나,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버튼을 유심히 살펴보며 내린 결론이 레버로 물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버튼을 눌러서 물을 내린다였다. 내심 훌륭한 추리라 생각하고 자화자찬하고 그쳤으면 될 것을, 굳이 '水'자가 들어간 버튼을 눌렀다. 궁~궁~궁~ 뭔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얼굴로 물이 튀기 시작했다.

허둥지둥 움직이다 오줌 싼 모양처럼 바지 가랑이를 다 적시고 말았다. 저 요상한 물총 기계를 멈추고 바지를 말리고 나가야 했으나 끌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바지를 적신 채 그냥 나와서 시내를 돌아다녀야 했다.

교토에서 가장 비싸게 먹은 식사는 豆水樓의 2,000엔짜리 도시락 세트였다. 유바(湯葉)를 먹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찾아간 집이었고, 소원성취했다. 떡구이나 두부 튀김 등 일부 단품의 맛이 고르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2층의 폐쇄형 다다미방이라 분위기도 호젓했고 점심을 지난 시간이라 종업원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마 여자와 단둘이 갔으면 뭔일을 벌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번에도 문제는 화장실에서 생겼다. 밥 먹기 전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을 갔는데, 물을 내리고 손을 씻으려고 보니 세면대가 안 보였다.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을 두리번두리번 아무리 찾아봐도 세면대는 안보였다. 어디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데, 이건 또 뭔 소린지. 여자 화장실에서는 볼일 보는 소리를 감추려고 물을 흘려보낸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여긴 남자 화장실이고...... 수건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손을 씻을 수는 있는 게 분명한데, 설마 일본인이 똥닦은 손을 그냥 저 수건으로 박박 문지르는 것은 아닐테고......

가만히 변기를 바라보니, 변기 위 물통으로 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고, 위에는 수도꼭지 같은 게 달려 있었다. 유레카! 물을 내리면 저 수도꼭지로 물이 나오면서, 손을 씻고 그 물이 흘러 내려가면서 물통을 채우는 거군. 에너지 절약. 하지만, 이미 때가 늦어 물통이 거진 차 가고 있었다. 결국, 물을 한 번 더 내리고 손을 씻고 나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식당의 화장실 사진을 찍지는 못했고 동일한 구조의 화장실 사진을 구글 검색으로 찾았다.


2. 2003년의 일본은 지방선거 중이었다. 이번에도 지방선거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중 눈길을 끈 것은 공산당 포스터였다. 쿠데타는 많았으나, 아래로부터의 혁명은커녕 그와 유사한 사건조차 없었던 나라에서 공산당의 전통이 무슨 의미일까 싶은 일종의 비아냥도 들었지만, 공산당조차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 무슨 토를 달 수 있을까. 어찌 되었든 뚜렷하게 포스터에 박힌 '共産黨'은 한자 그 자체로의 의미대로 인상적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3년 철학의 길을 걷다가 본 공산당의 선거 포스터. 이라크전 반대 문구가 또렷하다.


숙소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교토에서 일본 공산당이 얻는 지지가 자민당을 뛰어넘거나 거의 같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전국적으로도 공산당의 세력이 가장 큰 곳 중의 하나일 수 있다나. 왜 그러냐니, 자기도 정확히 말할 수는 없고 대충 교토의 기질이 그렇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6년 포스터. 오사카에서 잠시 만났던 casaubon형의 앨범에서 불펌. 나와 형은 공산당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예쁜 얼굴이라 당선 되야 한다는 합의를 봤다.


돌아와서 읽은 김윤식의 '청춘의 감각, 조국의 사상'에도 일본인의 글을 인용하며 비슷한 의미로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교토인의 반골(?) 혹은 저항(?) 기질이 언급되어 있었다.

지금도 교토인은 교토라 부르지 않고 기요라 하거니와, 호상과 절 중심으로 발달한 이 중세 헤이안조의 자존심을 지닌 교토는 지층이 함몰된 호수 밑바닥(호저부지)이어서 여름엔 찌듯이 덥고 겨울엔 몹시 춥다. 교토의 역사 속에는 이러한 지리적 조건과 함께 정치적 조건도 은밀히 배어 있음이 드러난다. 교토는 전제 지배자에 의해 쓰라린 경험을 했다. 1568년 노부나가가 입경했을 때 그전의 지배자와는 썩 달랐다. 새로운 기대감과 공포감이 교차했는데, 두번째 입경 때 그는 그의 출영을 위해 사람들을 동원하도록 강요했으며, 도시를 지켜주는 대가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한 귀족층을 토벌했다. 그 다음 장군으로 등장한 히데요시는 탄압적으로 나오지 않고 호상들과 제휴하여 정치에 임하였고, 그로인해 봉건 도시로서의 권위와 체모를 유지시켰다. 히데요시는 이 도시의 자체를 풍성하게 만들었으나, 그 뒤를 이은 이에야스는 교토를 버리고 에도로 막부를 옮김으로써 교토는 정치의 중심부에서 멀어져갔는데, 그로부터 메이지유신까지 천황을 중심부에 둔 기품과 세련성을 지닌 도시로 남았던 것이다.


역사적 적자가 정치적 서자로 격하된 것에 대한 반발과 상인의 자존심이 얽힌 것이 교토의 저항 기질이라고 보면 될까?

3. 대중목욕탕 센토(錢湯)

오사카의 비지니스 호텔은 싼 가격 답게, 호텔 전체에 단 하나의 샤워시설만 있었다. 번잡한 아침 시간에 먼저 사용할 수 있게 해준 친구가 있었는데, 내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쓸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여자친구와 같이 샤워하기 위해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었다.

샤워 부스의 크기로 보건대 무흣한 상상을 실천했다기 보다, 여자 친구가 사용할 수 있게 대신 기다렸거나, 기다리는 시간을 줄인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고마웠던 마음은 싹 사라졌다.

교토의 숙소는 자체적인 목욕시설이 없어 주변의 센토를 이용해야 했다. 이 기회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 싶어 열심히 다녔다. 단체로 등산 다녀온 후 목욕하러 갈때 외에는 대중목욕탕을 갈 일이 없고, 그 흔한 찜질방조차 안가니, 한국에서도 자주 하지 않는 경험이었다.

자주 가던 센토는 숙소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입구에 걸려있는 큼지막한 츠바키 포스터의 미녀들이 반가워서라도 찾게되는 곳이었다.

소문에서처럼 남탕과 여탕을 다 관찰할 수 있는 주인장의 자리가 있지는 않았다. 입구에서 돈만 받을 뿐이었다. 일본 목욕탕은 한국 목욕탕과 흡사한 구조였다. 천장이 뚫려 있어 여탕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다 들리는 게 처음에는 야릇한 자극이었지만, 이런 종류의 모든 자극이 그렇듯 시간이 지날 수록 익숙해졌다.

탕의 크기가 한국의 대중목욕탕보다 훨씬 작았고, 서서 사용할 수 있는 샤워시설이 없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사우나는 한국보다 좀 더 뜨거웠고. 전기탕이라고 물속에 전류가 흐르는 탕이 있었다. 겁이 나서 가슴까지는 못 집어넣고 다리만 넣고있다 나왔지만, 저릿저릿한 느낌이 좋아서 매일 애용했다. 맥주 한 잔 마시고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p.s. 위키에서 검색(영문)해 보니, 외국인을 받지 않는 센토가 있어 인종차별로 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인종차별에 대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떨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을까 싶다. 아시안계가 힘이 없으니 고소가 안 일어난 것 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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