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류 관광엽서사진관

첫 해외여행의 겉모습은 나름의 졸업 자축연이었지만, 그 보다는 새 밀레니엄을 이 땅에서 맞이하면 인생이 꼬일 것 같은 근거 없는 기분에 더 나가고 싶었다. 인생이 항상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 결국 불친절한 학사행정으로 2000년 1월말이나 되어야 떠날 수 있었지만.

목적지는 항상 계획과 즉흥의 사이에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다 마음에 들어 내린다거나, 아리따운 아가씨의 뒤를 쫓아 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낯선 곳에 대한 동경만큼이나 두려움은, 같은, 때로는 더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페르라셰즈는 가보고 싶었다. 그곳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는 않을 테지만, 파리에 가면 꼭 가고 싶었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2000년 겨울 유럽 여행의 마지막 날, 그곳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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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돌아와야, 군대 외에는 선택의 길도 보이지 않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반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디에서 살던지 일상이란, 탈출구의 너머에 항상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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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에 오고 싶었을까. 먹물든 사람 특유의 관념적 좌파주의, 고종석의 글이 갖고 있는 감성, 삶에 대한 비루한 애정과 생존의 확인......
'나는, 한 주일의 시작을 으레 그렇게 하듯, 페르 라셰즈 묘지로 향했어. 죽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위로받기 위해서.

그리고 11구역의 프레데릭 쇼팽과 89구역의 오스카 와일드에게 잠깐의 위로를 받은 뒤, 이 묘지 순례의 마무리를 으레 그렇게 하듯, 97구역 앞의 '코뮌 전사들의 벽'앞에 이르렀지. 거기서 산화한 영혼들의 진짜 불행으로, 내 얄팍한 불행의식을 세척하기 위해서.'(고종석, ‘광주의 5월, 파리의 5월’, “고종석의 유럽통신”에서)
두번 째 파리행에서는 돌아오는 항공편이 밤 늦게 출발해서, 오후 5시까지 여유가 있었다. 5년 만에 페르 라셰즈를 다시 찾았다.

5년전 묘지 입구에서 꽃이라도 사갈까 하다 그건 정말이지 속물이겠다 싶어, 잠시 망설이다 10프랑을 주고 지도를 샀다. 묘지에서 무슨 지도냐 생각했지만, 안샀다면 낭패를 볼 뻔 했다. 감만 믿고 돌아다니가는 출구도 못 찾기 십상일 정도였으니까. 5년이 지나도 지도는 유용했다. 죽은 자들이 이사를 다니지는 않을테니까.
 
48구역의 발자크에서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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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6구역의 짐 모리슨에서 끝난 2시간여의 묘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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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커밍아웃된 바람에 인생 꼬여 버린, 그러나 지금은 뭇 여인네들의 키스 세례를 받고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스핑크스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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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의 가장 구석에 가면, 2차대전중 희생된 유태인에 대한 기념탑과 바로 그 코뮌 전사들의 벽이 있다. 벽은 아무말 없이 밀리고 밀려 벼랑끝에서 떨어지는 자들의 모습을 조용하지만 강력한 의미로서 전달하고 있었다.

파리 코뮌의 마지막 하루, 파리 시내의 바리케이트에서 밀리고 밀려, 시 외곽의 공동묘지에서, 그리고 가장 구석까지 밀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손을 들고 나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정부군의 총알 세례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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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꿈이란 이렇게 밀려 사라지는 것이었을까. 나즈막한 벽에 이름조차 없어 '전사들의 벽'으로 뭉뚱그려진 코뮈나드들에 반해 건너편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들의 화려한 무덤은 또다른 대비가 되었다.

죽은 이들을 위로할 만큼, 그들에게 위로를 받을 정도로 혁명의 부채를 지고 있지 않지만, 여지껏 배워온 유럽사의 함축이 이 곳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해 왔다. 혁명, 문화예술 그리고 보헤미안적 자유 등등.

보헤미안적 자유의 20세기 후반 상징은 짐 모리슨일 것이다. 그의 묘지에 서 있는 흉상은 도난당한지 오래고, 60년대의 아이콘으로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낙서가 반복되고 있고, 경찰 두 명이 산책인지 감시인지 모르게 계속 서성대는 곳이다. 아마 페르 라셰즈를 찾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짐 모리슨의 묘지를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죽은 자를 찾아오는 산 자의 끊임없는 행렬과 숙명.

이 묘지의 유명인사들, 11구역의 쇼팽, 48구역의 발자크, 85구역의 마르셀 프루스트, 87구역 Crematorium의 마리아 칼라스와 이사도라 덩컨, 44구역의 이브 몽탕과 시몬 시뇨레, 89구역의 오스카 와일드, 꼬뮌전사의 벽, 97구역의 에디트 피아프, 6구역의 짐 모리슨 등 관광객마다 찾는 사람은 틀려도, 그 주변에 가면 말도 서로 건네지 않지만 눈빛 만으로도, 96구역의 모딜리아니를 못 찾아 나와 같이 헤매던 중년의 서양 남자를 보면서도, 동일한 사람의 무덤을 찾고 있다는 묘한 동질감을 주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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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나는, 무관심이 넘치는 대도시에서 죽은 이의 무덤을 일부러 찾는 중이다.

<어떤 감정도 소용돌이치는 사건들의 흐름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것들의 밀물과 조류를 거슬러 헤엄치려고 노력하다보면 열정의 강도가 줄어든다. 사랑은 욕구로 축소되고, 증오는 변덕으로 격하된다. ...... 살롱에서나 거리에서나 아무도 없어도 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절대 없으면 안되는 사람이나 절대적으로 불건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 파리에서는 모든 것이 용납된다. 정부나 기요틴이나 교회나 콜레라까지도 허용된다. 파리 사회에서 당신은 항상 환영받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없어도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는다.>(발자크, "인간희곡"; 데이비드 하비(2005),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생각의 나무, p.53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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